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평가/긍정적 평가 (문단 편집) ==== 수출진흥확대회의 ==== 1965년 1월 연두교서에 박정희는 수출제일주의를 공식적으로 국시로서 발표하며 경제 제 1의 지표로 내걸었고, 이와 동시에 이후 수출을 독려·촉진 시키기 위해 1962년부터 개최되었던 수출진흥회의를 대통령이 직접 출석하여 정기적으로 매월 주재하는 회의로서 규모를 확대하여, 정부의 모든 중진급 경제 관료들은 물론 재계의 기업총수들까지 모두 참석하는 수출전선에 사령탑의 역할을하는 최고 협의체로서 위상을 격상하게 된다. 회의를 주관하고 준비하는 역할은 1961년부터 수출진흥을 줄기차게 주장해오던 상공부와 외무부가 담당했다. 회의의 진행과정은 먼저 해외공사에서 우수한 실적을 달성한 수출 유공자 표창부터 상공부 장관의 모두 발언으로 시작되었고, 그 다음으로 상공부를 보고로 품목별 수출의 목표치 달성 점검했다. 단순 수치만을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적을 더불어서 정부의 중장기 계획와 정책의 동향 비교되어 보완되었다. 그 다음은 외무부가 수출 시장과 대외 여건 상황을 보고했는데, 상공부의 품목별 실적과 대비하여, 수출의 지역별 교차점검도 이루어졌으며, 마지막으로는 대통령의 훈시가 이어졌는데, 대체로 일반적인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문제점을 다음회의까지 해결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상공부와 외무부의 보고가 전체 시간의 약 70%를 확인했는데 회의의 핵심은, 수출정책의 진행상황과 계획의 점검과 그에 따른 보완책 대비책 마련이였다. 나머지 시간에는 질의응답 시간으로 기업총수들은 수출 및 경제 관련한 애로사항과 현안을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했고, 대통령이 그 자리에 출석한 관계부처 장관들을 통해 바로 시정 명령을 내려, 관련한 애로와 장벽들이 아주 빠르게 해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출진흥을 위한 무역정책과 제도가 하나하나 새롭게 만들어졌으며, 직접적인 회의를 통한 관민간의 상호적인 빠른 피드백과 현황파악은 60-70년대 동안 사실상 정부와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한 몸으로 만드는 현장으로서 관민협동체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국가 주도의 관치경제로 정부가 경제 전반의 정책을 결정하던 당시 상황에서, 민간에서의 여러가지 정부 정책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장이 되었다. [[파일:SSI_20130501204634_V.jpg]] ||1968년 3월 18일 수출진흥확대회의|| 수출진흥확대회의는 당시 대통령이 직접 의장직을 맡아 주재하는 회의였고, 1965년부터 1979년 동안 총 153회로 다수 개최했였으나, 이중 박정희는 147번을 출석하여 사실상 매월 정부 부처들과 기업들에게 정기적으로 수출현황을 보고받고 직접 수출입 실적과 경제 현황을 검토하며 수출전선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절대적인 권력의 대통령 직접 주재하여 수출실적을 점검하고 훈시한 대규모 회의인만큼, 참석자들은 최고로 긴장한 상태로 참석해야했으며, 특이상황을 대비해 대책을 마련해야했다. 따라서 그 사전작업에 있어 상공부와 외무부를 비롯한 여러 정부 부처들은 민간 기업들과 항시 서로 긴밀히 소통하며 수출 현황을 파악했고, 회의전에 수출증대를 위한 필요한 조치들이 항상 먼저 준비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회의를 매월 개최함으로서, 정기적인 점검과 분석을 통해 수출에 있어 관민의 나태와 방만을 방지했고, 60-70년대 폭발적인 수출의 성장세를 지속적으로 달성가능하게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수출진흥확대회의는 말 그대로 명료하게 다른 부과 목표없이 수출증대를 묙표로 수출과 관련해서 모든 내용을 토의, 점검, 결정하는 기구였고, 수출이 60년대 한국 경제에서 가진 위상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거시경제가 전부가 수출에 관련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했으므로, 사실상 수출진흥회의는 한국 경제의 거의 모든 문제가 토의, 점검, 결정, 권고되는 최고 기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다. 다만 매달 정기적으로 열리던 수출진흥확대회의는 1977년 중화학공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개편되고 외국에서 막대한 중화학 자본이 들어오며 축적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60년대 수출전선이라 불릴만큼의 노동집약적 산업에 기반한 수출제일주의의 중요성은 점차 떨어지는 와중에 수입도 그에 걸맞는 중요한 위치로 격상되었고, 똑같이 관리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무역진흥확대회의로 개칭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 후반쯤 들면 점점 개최 빈도 수가 뜸해졌으며, 전두환 정부부터는 아예 명목상의 비정기적인 회의 기구로 전락했고 1986년 완전히 폐지된다. 예나 지금이나 설정된 목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달성되지 못했다면 왜 달성을 하지 못했는지를 하나 하나 밝혀서 이에 필요한 대응책을 만들고, 다시 정책으로 피드백 시키는 과정은 초기 목표의 설정보다도 중요하게 취급되며,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핵심으로 여겨진다. 그런 측면에서 수출진흥확대회의는 아주 모범적인 거버넌스 체계로서 기능하는 수출전선의 총사령탑으로서, 1960-70년대 수출 증대에 있어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고 평가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